집중력이 부족한 게 아니다, 실행 기능의 차이일 수 있다
일을 시작하려고 자리에 앉지만 몇 분도 지나지 않아 딴생각에 빠지거나, 중요한 약속을 자주 잊고, 마감 직전까지 일을 미루는 일이 반복된다면 “나는 왜 이럴까?”라는 자책으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하지만 이 같은 패턴이 습관이나 게으름의 문제가 아니라면, 성인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일 가능성을 의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ADHD는 흔히 아동기에 진단받는 질환으로 알려져 있지만, 최근에는 성인이 되어서야 자신의 어려움을 이해하게 되는 ‘성인 ADHD’ 사례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특히 성인 ADHD는 아동기보다 증상이 더 복잡하고, 일상생활에 다양한 방식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오해를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인 ADHD란 무엇인가?
ADHD는 Attention 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의 약자로, 주의력 부족, 충동성, 과잉행동 등의 증상을 동반하는 신경발달장애입니다. 아동기에만 국한되지 않고 성인까지 이어질 수 있으며, 아동기 진단을 받지 않았더라도 성인이 된 후에 진단받는 경우도 많습니다.
성인 ADHD는 아동기보다 과잉행동보다는 주의력 결핍과 실행 기능의 어려움이 주요하게 나타납니다. 이는 직장, 인간관계, 학업, 가정생활 등 다양한 영역에서 문제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성인 ADHD의 대표적인 증상
성인 ADHD는 아래와 같은 증상들이 장기간 반복되고, 일상 기능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를 말합니다:
✔ 주의력 부족
- 대화를 하다가도 중간에 흐름을 놓침
- 문서를 끝까지 읽지 못하거나, 건너뛰며 읽음
- 일상 업무에서 실수가 잦음
✔ 계획·조직 능력 저하
- 할 일 목록을 만들고도 실행하지 못함
- 우선순위 설정이 어렵고, 마감 직전까지 미루는 경향
- 시간 감각의 왜곡 (지금 해야 할 일을 뒤로 미룸)
✔ 기억력 문제
- 약속, 일정, 중요한 정보를 자주 잊음
- 물건을 잘 잃어버림 (열쇠, 핸드폰, 카드 등)
✔ 감정 기복과 충동성
- 사소한 일에도 과도한 감정 반응
- 말실수, 충동 구매, 갑작스러운 행동 등
✔ 과도한 산만함
- 주제에서 벗어난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짐
- 멀티태스킹을 하다가 아무것도 끝내지 못함
이러한 증상은 누구에게나 일시적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일상에 영향을 줄 경우, ADHD를 포함한 주의력 관련 질환의 가능성을 고려해 볼 수 있습니다.
흔한 오해 ① “의지가 약한 사람일 뿐이다?”
많은 성인 ADHD 당사자들은 “그냥 게으른 거 아니야?”, “노력이 부족한 거지”라는 말을 듣습니다. 하지만 ADHD는 뇌의 전두엽 영역(실행 기능을 담당하는 부분)의 기능 조절 문제에서 비롯됩니다.
즉, 의지력이 약한 것이 아니라 뇌가 우선순위 정리, 행동 계획, 충동 억제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신경학적 차이를 의지력으로 해결하려 들면 오히려 자존감이 떨어지고 자책이 반복됩니다.
흔한 오해 ② “어릴 때 진단 안 받았으면 ADHD가 아닐 것”
많은 성인이 “나는 어릴 때 멀쩡했는데?”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ADHD는 아동기에 명확한 행동 문제없이 자라더라도, 성인이 되어야 환경의 복잡성과 책임이 커지며 증상이 표면화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학교에서는 부모와 교사의 구조 속에서 지내기 때문에 문제가 드러나지 않지만, 직장에서는 스스로 시간 관리, 우선순위 설정, 복잡한 멀티태스킹을 요구받게 되면서 어려움을 느끼게 됩니다.
진단은 어떻게 받을 수 있을까?
성인 ADHD는 자가 진단만으로 판단하기 어렵고, 전문적인 진료와 상담이 필요합니다.
대개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아래와 같은 절차로 진단을 진행합니다:
- 초기 문진 및 일상생활 기능 평가
- 구조화된 인터뷰 및 설문 (ex. ASRS, DIVA 등)
- 아동기 증상 이력 확인 (있다면 더 명확함)
- 필요 시 뇌파 검사 또는 심리검사 병행
특히 다른 정신질환(우울증, 불안, 강박 등)과의 감별 진단이 중요합니다. ADHD와 유사한 증상을 보이지만 원인이 다른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ADHD일까 아닐까? 체크리스트로 살펴보는 자기 점검
아래 항목 중 5개 이상이 6개월 이상 지속되며 일상에 불편을 준다면, 전문 상담을 권장합니다.
- 해야 할 일을 자주 미룬다
- 여러 일을 동시에 하려다가 제대로 끝내지 못한다
- 머릿속이 늘 산만하고 복잡하다
- 물건을 자주 잃어버린다
- 감정 조절이 어렵고, 감정 기복이 심하다
- 규칙적인 루틴 유지가 어렵다
- 계획을 세워도 실천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문제를 인식하면 대응이 가능해진다
성인 ADHD는 충분히 관리 가능하며, 스스로를 이해하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지금까지 반복된 습관, 미루는 행동, 산만함이 단순한 나약함이 아니라 뇌의 실행 기능과 관련된 차이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자책 대신 대처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문제를 의심하고 점검해 보는 용기입니다. 그리고 환경을 바꾸고 습관을 조정해 가는 실천입니다. ADHD는 ‘문제 있는 사람’이 아니라, 다르게 작동하는 뇌를 가진 사람일 뿐입니다.